연천 경순왕릉
사적 제 244호(1975.06.25 지정)
처음에는 신라경순왕릉이었다가 2011년7월28일 '연천 경순왕릉'으로 변경되었다.
몇번을 가봤지만 갈때마다 한가지씩 알아야할것이 생기는것 같다.
무심히 지나치는 울타리도 새롭고
'지뢰'라고 쓰여진 표지판도 역시 새롭게 다가온다.
한국전쟁당시에도 그렇지만
휴전후에도 북의 도발이 계속돼서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간것도 몇번이나 됐었다.
너무 자주 그런 도발이 있어서인지
나도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이 웬만한 일에는 눈하나 꿈쩍을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오히려 걱정돼서 전화가 걸려 오거나하지
이상할정도로 조용할때가 많았다.
고랑포 역사공원을 지나 산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경순왕릉이 보이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로 가면 경순왕릉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볼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이 총알 자국이 선명한 비석이다.
기관총으로 사격한 것인지 제법 큰 총탄 자국이 남아있어 잠시 풀어졌던 긴장감을 추스리게 한다.
올라가는 길에 이렇게 울타리를 해놓고 '지뢰'라는 표지판을 달아놨다.
한국전쟁후에 북의 도발이 몇번 이어지자 주요 지역에 지뢰를 대량 매설했다고 하는데
울타리를 해놓은 이곳도 위험지역이라 예방차원에서 설치를 한것이다.
안내소가 보이고
해설사가 있으면 경순왕릉에 대한 해설을 들을수도 있다.
코로나때문에 모든것이 여의치않아 정상적으로 운영은 안되는듯하다.
방문했을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날씨가 좋아 하늘도 시원하게 열려있었다.
좀잠자리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주위를 맴돌고 환영하는듯했다.
왕릉으로 올라가는 곳 근처에 신도비와 비각이 있는데
많이 훼손돼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장난스런 메모가 붙어있다.
경순왕(敬順王)의 영정(影幀). 경주의 숭혜전(崇惠殿)에 있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마지막 왕이다. 성은 김, 이름은 부로 신라문성왕의 6대손이며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였다.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막내 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귀부후 경순왕은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978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