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 군남면 왕림리
본래 연천현 남면의 석현리 지역으로 조선 태종과 이양소의 고사에 의해 ‘왕림' 또는 ‘왕림동'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왕림동이 왕림리로 승격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현리와 마전군 화진면의 지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왕림리라 하여 군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후 38선 북쪽이 되어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954년 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5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댕골[大陽洞] : 윗댕골 남쪽에 있던 마을 이름.
새터[新垈, 新垈洞] : 샛지루개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이씨가 7대째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샛지루개[間芝谷洞] : 왕림리 충혼탑 북쪽에 있던 마을. 지루개 마을과 서산 마을의 사이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곳이다.
서산(西山) : 새발터 동쪽에 있는 마을.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 서인계 기호학파의 대학자였던 조현기(趙顯期, 634∼1686), 조성기(趙聖期, 638∼1689), 이민곤(李敏坤, 695∼1756), 이송(李淞, 725∼1789) 등 조선조 유학과 실학사상가들이 배출된 곳이다. 학문 교류의 중심이 었던 양주군의 서산(西山) 마을과 견줄 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정착한 지 7대가 된 우봉박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아랫도리개[下石峴洞] : 죽터골 북쪽에 있던 마을.
윗댕골[上大陽洞] : 댕골 북쪽에 있던 마을.
윗도리개[上石峴洞] : 도장골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임천 조씨(林川趙氏)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죽터골[竹垈洞] : 강신봉 남쪽에 있던 마을.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곳을 지나다 말에게 여물을 먹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한자로는 ‘죽대동(竹垈洞)'으로 표기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경주 이씨(慶州李氏) 2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며, 서정시인 김상용(金尙鎔, 902∼1951)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지루개[芝谷洞] : 만호터 동쪽에 있던 마을. 지루개고개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큰왕림[旺林洞] : 작은왕림 북쪽에 있던 마을
강신봉(降神峰) : 달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 거물래산, 고모산부리 : 용뱅이고개 남쪽에 있는 동그란 모양의 산. 높이 94m. 거물래(고무래) 형상이라 한다.
고조울 : 서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 옆의 새발터 산부리가 새의 부리처럼 길게 뻗어 나온 형상이다. 이러한 지형을 칭하는 ‘곶(串)'이 연철된 ‘고지'가 골짜기의 다른 이름인 ‘울'과 합쳐 ‘고지울'이 되었다가 지금의 ‘고조울'로 음이 변하였다.
남산 : 돌고개 북쪽에 있는 산. 높이 247m. 진상리*삼거리와 경계에 있다.
높은터 : 봉화봉 아래 높은 곳에 위치한 넓은 밭.
능밖 : 지루개 남쪽에 있는 지명. 골 안에 능처럼 큰 묘가 있는데, 묘의 밖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달봉[月峰] : 매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
도장골 : 아랫도리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도장 주머니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돌고개[石峴] : 배나무골에서 진상리의 능모루로 넘어다니던 고개.
동중골[東亭洞] : 윗댕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된박너머 : 거물래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만호터[萬戶垈] : 지루개 동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예전에 어떤 풍수가가 이 곳 지형을 보고 후세에 만 가구의 집들이 들어설 자리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매봉 : 피우개고개 북쪽에 있는 봉우리.
문안개울약수터 : 거물래산 남쪽의 현무암 석벽 중간에서 떨어지는 약수. 예전부터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여름철에는 근방의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물맞이를 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상수원으로 이용되어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배나무골 : 돌고개 남쪽에 있는, 예전에 배나무가 많았던 골짜기.
봉화봉(烽火峰) : 부처고개 동쪽에 있는 봉우리. 높이 232m. 삼거리*연천읍 차탄리와 경계가 된다.
부처고개 : 쪽쪽골에서 삼거리 부처골로 넘어가는 고개. 일명 ‘큰고개'라고도 한다.
불당골[佛堂谷] : 댕골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예전에 불당이 있었다 하나 현재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새발터 : 서산 서쪽, 남산에서 내려온 긴 산부리. 지형이 새의 발처럼 생겼다고 한다.
안골 : 능밖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루개 마을에서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림고개 : 서산에서 큰왕림으로 통하는 고개. 고갯마루에 돌 서낭당이 있다.
용뱅이고개[龍峰峴] : 새터에서 왕림리로 통하는 고개. 용봉의 산자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봉(龍峰) : 봉화봉 남쪽에 있는 봉우리.
작은왕림 : 된박너머와 큰왕림 사이에 있는 골짜기.
장진천(?津川) : 전곡읍 은대리와 사이에 있는 하천.
정자터 : 큰왕림 마을에 있던 큰 느티나무 정자. 조선 태종이 재위에 있을 때 이양소가 연천읍 현가리의 도당골에 은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태종이 그를 만나기 위해 연천으로 친행을 하였는데, 마침 이양소가 왕림리 장진천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어가를 돌려 이 곳에 이르러 쉬면서 이양소를 기다렸다고 한다. 태종이 친히 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느티나무를 심고 마을 이름도 왕림(旺臨)이라 지었다 한다. 이 나무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베어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지루개고개[芝峴] : 댕골에서 지루개 마을로 넘어다니는 고개.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로 질러서 넘어가는 고개로 질러간다는 ‘질'과 고개의 뜻인 ‘개'가 합쳐져 ‘질개'가 되었다가 중간에 매개모음 ‘으'가 따르면서 지금의 ‘지루개'로 음이 변하였다. 여기에 ‘고개'가 뒤에 합해져 합성 지명인 ‘지루개고개'가 되었으나 한자로 음차하면서 ‘芝峴'이 된 것이다.
쪽쪽골 : 배나무골과 서산 사이에 있는 긴 골짜기.
피우개고개[稷峴] : 죽터골에서 진상리 피우개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해필이모탱이 : 왕림동에서 연천읍 차탄리의 덕녕이로 가는 중간에 있는 길모퉁이. 장진천 옆으로 길게 뻗은 도로가 이 곳에 이르러 갑자기 심한 경사를 이루며 모퉁이가 된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 곳에 도둑이 많았다고 한다.
활터거리 : 지루개 동쪽에 있는 장진천변의 들. 예전에 활을 쏘던 사정(射亭)이 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