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 왕징면 가천리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가재울'이라는 마을이 있어 가좌동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佳佐洞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좌동리와 형천리를 병합하여 ‘가천리'라 하여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월 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하나의 법정리이다.
가시내[荊川洞] : 손지터 동쪽에 있던 작은 마을. 예전에 이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옆에 가시나무가 자랐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0호 내외가 마을을 형성하였던 곳이다.
가재울[佳佐洞, 加佑洞] : 능말 서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장사 유씨(長沙兪氏)들이 40여 호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가좌동(佳佐洞)'은 ‘가장자리'의 방언인 ‘가쟁이'를 음차한 것으로, 본래는‘가장자리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능말[陵村] : 가재울 동쪽에 있던 마을.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정사의 어지러움에 회의를 느끼고 이 곳으로 낙향하여 일생을 마친 이근생(李根生)의 묘가 있다 하여 능골로 이름지어진 곳이다. 조선 후기에는 내시들이 모여 살아서 ‘내시촌'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해 오며, 한국전쟁 전에는 약 20여 호가 산촌(散村)을 이루었던 곳이다. 서남면 지역은 이 때 낙향한 이근생의 후손인 전주 이씨들이 한국전쟁 전까지 번성하였던 곳이다.
배랭이 : 가천리 가장 서쪽, 산골짜기에 있던 작은 마을.
손지터 : 배랭이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5호가 살았던 곳이다.
양지울[陽地洞] : 지루터 동쪽에 있는 마을.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청주 한씨(淸州韓氏)들이 0여 호 살던 곳이다.
장거리 : 자루터 서쪽, 마성리로 넘어가기 전에 있던 조그만 마을.
주을동(朱乙洞) : 가시내 서북쪽에 있던 작은 마을.
지루터[地於垈, 至於垈] : 양지울 서쪽, 골짜기 안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5호가 살았다고 한다.
가시내개울 : 가시내 마을 앞을 지나 귀존리로 흘러가는 개울.
길마재 : 가재울에서 냉정리의 물미치로 넘어다니던 고개. 고갯마루가 소 등에 얹은 길마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영원산(靈原山, 靈源山) : 가천리·석둔리·장학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217m.